문학의 숲 [김성윤의 채근담 지혜 32]사람은 천천히 가까이하고, 일은 처음부터 원칙을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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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신중함이 관계를 오래가게 하고, 처음의 바름이 일을 끝까지 지킨다
사람을 사귈 때 처음부터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그만큼 쉽게 멀어질 수도 있다.
일을 처리할 때도 처음에는 원칙 없이 시작해 놓고 나중에 기교를 부려 수습하려 하면
더 큰 어려움을 만날 수 있다.
『채근담』은 인간관계와 일의 처리에서 공통적으로 처음을 잘 지키는 지혜를 강조한다.
관계는 서두르지 말고 신뢰를 쌓아가며, 일은 처음부터 서툴더라도 원칙과 기본을
지켜야 한다.
■ 원문(原文)과 한글 음독
與人者 與其易疏於終 不若難親於始(여인자 여기이소어종 불약난친어시)
御事者 與其巧持於後 不若拙守於前(어사자 여기교지어후 불약졸수어전)
■ 풀어보기
『채근담』은 이번 구절에서 사람을 사귀는 법과 일을 처리하는 법을 나란히 이야기한다.
겉으로 보면 인간관계와 일 처리는 서로 다른 문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둘에는 공통점이 있다.
처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첫 구절은 與人者(여인자)다.
다른 사람과 교제하고 관계를 맺는 사람을 뜻한다.
사람을 처음 만나 마음이 잘 맞으면 금세 가까워질 수 있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상대를 잘 안다고 생각하며, 짧은 시간 안에
깊은 관계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채근담』은 그런 관계일수록 조심하라고 한다.
與其易疏於終(여기이소어종). 나중에 쉽게 소원해지는 것보다는,
不若難親於始(불약난친어시). 처음에 쉽게 친해지지 않는 편이 낫다는 뜻이다.
여기서 難親(난친)은 사람을 냉정하게 대하거나 일부러 벽을 만들라는 뜻이 아니다.
관계를 너무 서둘러 깊게 만들지 말라는 의미에 가깝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성격과 습관이 나타나고, 이해관계가 얽혔을 때의 태도도 드러난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더라도 서로를 알아가면서 신뢰를 조금씩 쌓는 관계가 오래가기 쉽다.
『채근담』은 첫 만남의 뜨거움보다 오래가는 신뢰를 중요하게 본다.
이 점은 앞선 28회의 가르침인 “使人有乍交之歡 不若使其無久處之厭”, 즉 처음 만났을 때의 환대보다 오래 함께해도 싫증나지 않는 관계가 더 낫다는 가르침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두 번째 구절은 인간관계에서 일의 세계로 넘어간다.
御事者(어사자). 일을 맡아 처리하고 다스리는 사람을 뜻한다.
『채근담』은 일을 할 때도 처음의 자세를 중요하게 본다.
與其巧持於後(여기교지어후). 나중에 교묘한 방법으로 일을 유지하고 수습하는 것보다는,
不若拙守於前(불약졸수어전).차라리 처음부터 서툴더라도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편이
낫다는 뜻이다.
여기서 拙(졸)이 중요하다.
보통 졸렬하다, 서투르다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기 쉽지만, 이 문장에서는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 소박함과 우직함에 가깝다.
처음부터 원칙을 지키면 다소 느리고 답답해 보일 수 있다.
다른 사람보다 요령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의 작은 편법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큰 편법을 필요로 한다.
한 번 원칙에서 벗어난 일을 유지하려면 또 다른 임기응변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채근담』은 巧(교)보다 拙(졸)을 택한다.
영리하게 수습하는 능력보다 처음부터 수습할 일을 만들지 않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두 문장은 하나의 가르침으로 모인다.
사람도 일도 시작을 가볍게 하지 말라.
사람에게는 천천히 다가가고, 일에서는 처음부터 원칙을 지켜라.
관계에서는 신뢰를 쌓을 시간을 두고, 일에서는 기본을 지키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
그것이 오래가는 관계와 흔들리지 않는 일을 만드는 『채근담』의 지혜다.
■ 오늘의 메시지
오늘날 우리는 무엇이든 빨리 이루어지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을 만나도 빨리 친해지고 싶어 하고, 일을 시작하면 빠른 성과를 원한다.
인간관계에서도 첫인상과 즉각적인 호감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일에서는 속도와 효율이 능력으로 평가되곤 한다.
그러나 빠름이 언제나 깊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쉽게 가까워진 관계는 서로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게 커지면서 작은 실망에도 쉽게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천천히 상대를 알아가며 만들어진 관계는 서로의 장점뿐 아니라 부족함까지 받아들이면서 깊어진다.
일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기본을 지키는 것은 번거롭다.
원칙을 확인하고 절차를 밟으며 하나씩 쌓아가는 과정은 느려 보인다.
그러나 그 느림이 결국 가장 빠른 길이 될 수 있다.
처음에 대충 해놓고 나중에 고치려 하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채근담』은 그래서 우리에게 묻는다.
나중에 멀어질 만큼 서둘러 가까워질 것인가?
나중에 교묘하게 수습해야 할 만큼 처음을 허술하게 할 것인가?
관계의 깊이는 처음의 속도로 결정되지 않는다.
일의 완성도 역시 마지막의 재주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래가는 것은 대부분 천천히 시작되고, 단단한 것은 처음부터 기본을 지킨다.
■ 오늘의 교훈
사람과의 관계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신뢰를 쌓아라.
처음의 뜨거운 친밀함보다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는 관계를 소중히 하라.
일은 나중의 잔재주보다 처음의 원칙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조금 서툴더라도 기본을 지키면 마지막이 흔들리지 않는다.
■ 편집자 주
與人(여인) : 사람과 더불어 사귀고 관계를 맺음.
易疏於終(이소어종) : 나중에 쉽게 소원해지고 멀어짐.
難親於始(난친어시) : 처음부터 지나치게 쉽게 가까워지지 않음. 냉정하게 대하라는 의미보다는 신중하게 관계를 맺으라는 뜻이다.
御事(어사) : 일을 다스리고 처리함. 여기서 御는 ‘말을 몰다’라는 본뜻에서 나아가 다스리고 처리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巧持於後(교지어후) : 일이 진행된 뒤 잔재주나 교묘한 방법으로 유지하고 수습함.
拙守於前(졸수어전) : 처음부터 서툴고 우직해 보이더라도 기본과 원칙을 지킴.
巧(교) : 재주 있고 교묘함. 이 문맥에서는 뒤늦게 일을 수습하기 위한 임기응변과 잔재주의 의미가 강하다.
拙(졸) : 서투름. 여기서는 기교를 부리지 않는 우직함과 소박함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 한자 한 글자씩 뜻과 음
1. 與人者
與(더불 여) 人(사람 인) 者(놈 자)→ 여인자
2. 與其易疏於終
與(더불 여) 其(그 기) 易(쉬울 이) 疏(성길 소) 於(어조사 어) 終(마칠 종)→ 여기이소어종
여기서 與其(여기)는 ‘그것과 더불어’라는 뜻으로 보기보다는 문장 구조상 “~하기보다는”**이라는 비교 표현으로 이해해야 자연스럽다.
3. 不若難親於始
不(아닐 불) 若(같을 약) 難(어려울 난) 親(친할 친) 於(어조사 어) 始(비로소 시) → 불약난친어시
4. 御事者
御(거느릴 어) 事(일 사) 者(놈 자) → 어사자
5. 與其巧持於後
與(더불 여) 其(그 기) 巧(공교할 교) 持(가질 지) 於(어조사 어) 後(뒤 후) → 여기교지어후
6. 不若拙守於前
不(아닐 불) 若(같을 약) 拙(졸할 졸) 守(지킬 수) 於(어조사 어) 前(앞 전) → 불약졸수어전
특히 이번 구절에서는 **始(시)와 終(종), 前(전)과 後(후), 巧(교)와 拙(졸)**의 대비가 절묘하다. 『채근담』은 끝에서 관계를 수습하는 기술보다 처음 관계를 맺는 신중함을, 뒤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영리함보다 앞에서 원칙을 지키는 우직함을 높이 평가한다.
■ 김성윤의 한 줄 채근담
“사람은 천천히 가까워져 오래 믿을 수 있게 하고, 일은 처음부터 우직하게 지켜 끝까지 흔들리지 않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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