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선관위의 무능, 민주주의의 심장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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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단순 실수가 아니라 선거 신뢰의 붕괴다
6·3 동시 지방선거 투표 현장에서 벌어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단순한 행정 착오로 넘길 일이 아니다. 선관위에 따르면 이날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투표소는 총 14곳이다. 지역별로는 송파구 가락2동·잠실2동·잠실4동·잠실7동·문정2동, 강남구 청담동, 광진구 구의3동 등 7개 동으로 파악됐다. 선관위는 마감 시각 이후에도 대기 유권자는 투표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결국 투표하게 했다”는 데 있지 않다. 국가 선거관리기관이 유권자의 참정권 행사를 현장에서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물론 허철훈 선관위 사무총장은 이날 오후 9시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 청사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사과로 끝날일이 아니다.
▲허철훈 선관위 사무총장 대국민 사과문 발표 . |
선거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절차다. 그 절차가 흔들리면 승자도 떳떳하지 못하고, 패자도 승복하기 어렵다. 특히 지방선거처럼 1표, 10표, 수십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릴 수 있는 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은 치명적이다. 한 사람이라도 투표를 포기하고 돌아갔다면, 그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민주주의 권리의 박탈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사태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는 사전투표율부터 높았고, 본투표 열기도 강했다. 그럼에도 선관위가 지역별 투표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면 이는 무능이다. 예측했는데도 대비하지 못했다면 더 큰 문제다. “용지가 모자랐다”는 말은 식당에서 밥이 떨어졌다는 말과 다르다. 선거에서 투표용지는 국민주권의 물리적 증표다. 그것이 부족했다면 선거관리의 기본이 무너진 것이다.
선관위의 해명도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렵다. 일련번호와 관리 절차 때문에 인근 투표소 용지를 쉽게 쓸 수 없었다는 식의 설명은 오히려 제도의 낙후성을 드러낸다. 대한민국은 세계적 디지털 행정국가를 자처한다. 그런데 정작 민주주의의 핵심 절차인 투표 현장에서는 종이 용지 배분 하나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첨단 행정은 구호였고, 선거 현장은 낡은 수기 행정에 머물러 있었던 셈이지 않는가?
국민 불신은 여기서 더 커진다. 선관위는 이미 여러 차례 공정성과 중립성 논란을 겪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지역,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역에서 투표 지연이 발생하면 국민은 이를 단순 실수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물론 근거 없이 부정선거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부정선거 의혹이 자라나는 토양을 만든 책임은 선관위에 있다. 신뢰받는 기관이라면 실수도 실수로 끝난다. 그러나 신뢰를 잃은 기관의 실수는 곧 의혹이 된다.
사후 대응도 미흡했다. 현장에서 기다리는 유권자에게 정확한 안내가 이뤄지지 않고, 혼란이 길어졌다면 그것만으로도 선거관리 실패다. 투표권은 기다리다 지쳐 포기해도 되는 권리가 아니다. 국가가 끝까지 보장해야 할 헌법적 권리요, 참정권의 행사다. 선관위가 이 국민의 기본권적 권리요, 기본 원칙을 현장에서 지켜내지 못했다면,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제 필요한 것은 형식적 사과가 아니다. 선관위는 투표용지 배분, 현장 발급, 비상 공급, 대기 유권자 관리, 책임자 보고 체계까지 전면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외부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하는 독립적 조사도 필요하다. 책임자 문책 없이 “다음부터 잘하겠다”는 말로 끝난다면 국민은 더 이상 선관위를 믿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투표로 완성된다. 그러나 투표를 관리하는 기관이 무능하고, 불투명하며,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면 민주주의는 절차 안에서부터 무너진다. 이번 사태는 선관위가 스스로 만든 경고음이다.
선관위는 명심해야 한다.
국민은 완벽한 기관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국민의 한 표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기관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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