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 [김성윤의 채근담 지혜 11] 비워야 채워지고, 채워야 흔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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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우라는 말은 흔하지만,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는 쉽지 않다.
비움과 채움의 균형이 곧 삶의 깊이를 결정한다.
원문과 한글 음독
軀殼的我 看得破 (구각적아 간득파)則萬有皆空 而其心常虛 虛則義理來居 (즉만유개공 이기심상허 허즉의리래거) 性命的我 認得眞(성명적아 인득진) 則萬理皆備 而其心常實 實則物欲不入 (즉만리개비 이기심상실 실즉물욕불입)
풀어보기
이 문장은 사람 안에 있는 두 차원의 자아를 말한다. 하나는 軀殼的我(구각적아), 곧 몸과 형체에 매인 나이고, 다른 하나는 性命的我(성명적아), 곧 본성과 생명의 근본에 닿아 있는 참된 나이다.
먼저 軀殼的我 看得破(구각적아 간득파)는 육체적이고 외형적인 나를 꿰뚫어 본다는 뜻이다. 사람은 흔히 몸, 체면, 소유, 지위, 외적 조건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한다. 그러나 『채근담』은 그런 바깥의 것들을 너무 절대화하지 말라고 말한다. 몸은 잠시 머무는 그릇일 뿐이고, 외적인 조건은 영원한 본체가 아니다.
그래서 則萬有皆空(즉만유개공), 곧 모든 존재와 소유가 결국은 공 함을 알게 된다고 하였다. 여기서 皆空(개공)은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가 아니라, 집착할 대상이 아니라는 깨달음에 가깝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잠시 왔다가 가는 것이며, 붙들수록 괴로움이 깊어진다.
그렇게 보면 而其心常虛(이기심상허), 그 마음은 늘 비어 있게 된다. 이 虛(허)는 공허함이나 무기력이 아니라, 사사로운 욕망과 집착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 맑은 상태다. 마음이 비어 있기 때문에 虛則義理來居(허즉의리래거), 의로움과 올바른 이치가 그 자리에 들어와 머문다. 욕심으로 꽉 찬 마음에는 바른 도리가 머물 수 없지만, 비워진 마음에는 의리와 진실이 자연히 깃든다.
이어지는 性命的我 認得眞(성명적아 인득진)은 한 걸음 더 깊은 차원이다. 나의 참된 생명과 본성을 참되게 인식하는 것이다. 사람은 겉모습을 벗겨 내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자기 안의 참된 중심이 무엇인지 발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성명(性命)의 나다.
그러면 則萬理皆備(즉만리개비), 모든 이치가 그 안에 다 갖추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인간의 본성 안에는 이미 도리와 분별의 씨앗이 있으며, 바르게 깨어 있으면 삶의 근본 원리도 함께 드러난다. 밖에서만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자기 안의 바른 성품을 먼저 돌아보라는 뜻이다.
그 결과 而其心常實(이기심상실), 그 마음은 늘 충실하고 단단해진다. 여기서 實(실)은 욕심으로 채워진 상태가 아니라, 본분과 진실로 충만한 상태다. 이렇게 마음이 참되게 차 있으면 實則物欲不入(실즉물욕불입), 물질적 욕망과 헛된 욕심이 틈타 들어오지 못한다.
결국 이 구절은 수양의 두 방향을 함께 말한다.
하나는 헛된 집착은 비워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참된 본성은 굳게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비워야 할 것을 비우고, 지켜야 할 것을 지킬 때 마음은 맑으면서도 단단해진다.
오늘의 메시지
이 구절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균형을 가르쳐 준다. 사람들은 흔히 마음공부를 “모두 비우는 것”으로만 생각하거나, 반대로 “자기 확신을 굳게 세우는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채근담』은 두 가지를 함께 말한다. 비워야 할 것은 비우고, 채워야 할 것은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몸에 매인 나는 늘 비교하고 불안해한다. 남보다 더 가져야 하고, 더 높아져야 하고, 더 인정받아야 한다는 마음이 따라붙는다. 그 마음으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먼저 겉의 나를 조금 멀리서 보아야 한다. 그러면 세상의 많은 것들이 생각보다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때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비워진다.
하지만 비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마음이 텅 비기만 하면 흔들리기 쉽다. 그래서 참된 본성과 생명의 자리를 바로 세워야 한다.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떤 가치를 지켜야 하는지, 무엇이 사람다운 길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럴 때 마음은 공허해지지 않고 충실해진다.
비워진 마음에는 의리가 깃들고, 참되게 채워진 마음에는 욕망이 틈타지 못한다. 이것이 『채근담』이 말하는 깊은 수양의 길이다. 집착은 덜어내고, 본분은 굳게 세우는 것. 그때 사람은 가벼우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겸손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게 된다.
오늘의 교훈
몸에 매인 집착을 내려놓으면 마음은 비워지고, 비워진 마음에는 의리와 바른 도리가 깃든다.
참된 본성과 생명을 바로 깨달으면 마음은 충실해지고, 충실한 마음에는 욕망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한다. 비워야 할 것은 집착이고, 지켜야 할 것은 본성이다.
편집자 주
軀殼的我(구각적아): 몸과 형체에 매인 나를 뜻한다. 외모, 소유, 체면, 지위 등 바깥 조건에 집착하는 자아를 가리킨다.
看得破(간득파): 꿰뚫어 본다는 뜻이다. 집착의 대상을 실상 그대로 보고 거기에 사로잡히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萬有皆空(만유개공): 모든 존재와 소유가 집착할 실체가 아님을 뜻한다. 허무주의가 아니라 무집착의 통찰에 가깝다.
心常虛(심상허): 마음이 늘 비어 있는 상태다. 욕심과 아집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 맑고 열린 마음을 말한다.
義理來居(의리래거): 의로움과 바른 이치가 그 마음에 깃든다는 뜻이다. 비워진 마음에 도리가 자리 잡음을 이른다.
性命的我(성명적아): 본성과 생명의 근본에 닿아 있는 참된 나를 뜻한다. 겉이 아닌 인간 존재의 중심이다.
認得眞(인득진): 참됨을 바로 알아차린다는 뜻이다. 자기 안의 본래 성품과 참된 삶의 방향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다.
萬理皆備(만리개비): 모든 이치가 이미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바른 본성 안에 삶의 도리가 함께 들어 있음을 말한다.
心常實(심상실): 마음이 늘 충실하고 진실한 상태다. 욕심으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본분과 진리로 단단히 서 있는 마음이다.
物欲不入(물욕불입): 물질적 욕망과 헛된 탐심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뜻이다. 마음의 중심이 바로 서면 욕망이 틈타기 어렵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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